사과가 없다는 것은 사과가 0개 있다는 것과 같고 이것은 사과가 비어있다는 것과 같다. 무아(無我) 즉, 내가 없다는 것은 내가 비어있다(空공)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이럴 때 온갖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 맞으면 집착하고(탐하고, 貪탐할 탐) 나에게 맞지 않으면(마땅치 않으면) 짜증내고(성내고, 瞋성낼 진) 탐욕(집착)과 분노로 생긴 어리석음(癡어리석을 치)이 온갖 고통을 만들기 때문에 탐(貪),진(瞋),치(癡)를 없애면(비우면) 온갖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 따르면 나는 오온(五蘊:색수상행식:육체,느낌,생각,욕구,인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자아라고 한다. 이것을 버리라고 한다. 오온에 집착하는 것은 괴롭기 때문이다. 오온은 항상 변한다(無常무상). 단 한순간이라도 그대로 있는 법이 없다. 어제와 오늘의 내 생각과 감정은 다르다. 외모도 변하고 욕구도 바뀌고 인식도 다르다. 이것들이 나에게 좋으면 집착하고(탐하고) 나쁘면(마땅치 않으면) 성내면서(짜증내면서) 생긴 어리석음이 온갖 괴로움(苦고)을 만든다. 그래서 오은에 집착하는 것을 비우면(버리면) 괴로움도 사라진다. 오온을 비우면 오온이 없다는 것이고 오온이 없다는 것은 무아(無我) 즉, 내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오온은 항상 변하므로(無常무상하므로) 고정불변하는 내가 없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정불변하는 내가 없다는 의미보다 나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개념으로 무아(無我)를 사용했다. 오직 현실 속에서 나의 괴로움을 없앤(비운) 상태가 무아(無我)인 것이다. 화살에 맞아 괴롭다면 화살을 빼낸(비운) 상태가 무아(無我)인 것이고, 번뇌(욕망과 분노)로 괴롭다면 번뇌(욕망과 분노)를 빼낸(비운) 상태가 무아(無我)인 것이다.
부처님이 살던 당시 인도 브라만교(힌두교의 바탕)에서는 고정불변하는 아트만(眞我진아)이 있다고 믿었다. 반드시 업보에 따라 윤회하는 '진짜 나'라는 뜻이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영원불변의 영혼 같은 것이다. 기독교의 영혼과 다른 점은 아트만은 반드시 업보에 따라 환생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고정불변이다. 브라만교의 윤회설과 다르게 부처님은 지금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전생에 선업을 쌓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생에 악업을 지었으면 다음 생에는 선업을 쌓도록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고, 현생에 고귀한 신분이라도 다음 생에는 인격의 완성을 위해 천한 신분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한 신분도 소중한데 브라만교의 윤회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그대로 있는 법이 없고, 항상 변하므로(無常무상하므로) 고정불변하는 내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고정불변하는 내(영혼)가 없다는 말은 무상(無常)한 내(영혼)가 있다는 말과 같다. 스마트폰(사람)을 바꿔도 유심(영혼)은 그대로 쓸 수 있지만 유심(영혼)도 변한다. 즉, 영혼이 없다는 의미보다 영혼도 변한다는 의미이다. 경험적으로 알 수도 없는데 고정불변하는 내(영혼)가 있나 없나 하는 한가한 고민보다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개념으로 무아(無我)를 사용했다. 고정불변하는 내(영혼)가 어디 있으며, 죽으면 뭐로 다시 태어나는가 하는 고민은 부처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현실 속에서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다.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는데 고정불변하는 내(영혼)가 있다[스마트폰(사람)을 바꿔도 유심(영혼)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괴로움이고 그런 생각만 버려도 반드시 업보에 따라 환생한다는 카스트 제도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사라진다고 봤다. 카스트 제도하에서는 고정불변하는 내(영혼)가 있다는 생각[영혼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버리는(비우는) 것이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고, 내(그런 생각)가 비어있다(空공)는 것이고, 내(그런 생각)가 없다는 것이다.
사성제에 따르면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은 극한의 쾌락(사후세계를 부정하는 쾌락주의)도 아니고 극한의 고행(고통을 감내하면서 업을 걷어내는 방식, 부처님도 6년동안 고행을 했지만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지 못함)도 아니고 중도(中道=中觀중관)인 팔정도(八正道)를 통해 탐(貪),진(嗔), 치(癡)가 0이 될 때까지 계속 비워야 한다.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야 괴로움이 사라진다. 괴로움의 원인을 팔정도(八正道)를 통해 없애면 열반이고, 없애지 못하면 괴로운 삶이 반복된다. 괴로움의 원인은 탐(貪),진(嗔), 치(癡)이고, 생로병사,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층간소음처럼 싫어하는 소리를 계속 듣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존재하는 것(연명하는 것)이 괴로움(8苦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