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 공주는 무교에서 첫번째 무당이고 모든 무당들의 조상으로 추앙을 받는 존재(신)이다. 옛날에 오구왕은 딸만 6명이 있었는데 일곱번째도 딸이 태어나자 화가난 왕은 딸을 버렸고 죽을 병에 걸린다. 약은 저승에 있었고 버려진 공주라는 의미의 바리 공주는 저승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다. 버림받은 바리공주는 저승에 가서 약을 가져와 왕을 살리고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무당(신)이 된다. 오구굿을 통해 망자의 영혼이 무당에게 실려 망자의 자식들과 대화를 하고 바리 공주의 안내로 망자의 영혼은 극락으로 인도되므로 망자의 자식들은 위로를 받는다.
요즘에는 거의 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사자상(使者床)이 있었다. 저승사자 3명이 온다고 하여 사자상에는 밥과 국이 있고, 저승으로 가는 먼 길에 쓰라고 엽전도 있고 간장이 있었는데 저승사자가 물인줄 알고 간장을 마시면 저승으로 가는 길에 목이 말라 다시 오게 하려고 놓았다고 한다. 저승이 먼 곳이라는 생각은 사후세계관이 확실하게 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카르마(업보)의 법칙에 따르면 이전에도 이승에 숱하게 왔다갔고 앞으로도 숱하게 올텐데 유교의 영향으로 현세중심적인(현세에 미련이 많은) 한국 사람들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속담도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이승이 좋다.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 저승은 이승보다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높은 차원은 낮은 차원을 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낮은 차원은 높은 차원을 볼 수가 없으므로 이승에서 저승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저승으로 가는 길은 먼 곳이 아니라 차원 이동에 불과한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실제로 바리 공주처럼 저승을 27년 동안 왔다갔다했다. 사후세계는 관념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그 세계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같은 장소라도 마음가짐이 나쁜 사람에게는 지옥이 되고, 마음가짐이 좋은 사람에게는 천국이 된다.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앞 얼굴의 모습을 볼 때 뒤통수를 볼 수 없지만 공간 제약이 없는 4차원 존재는 앞 얼굴의 모습과 뒤통수를 동시에 볼 수 있고, 우리 몸 속 모든 장기의 내부까지 다 들여다 볼 수 있고 동시에 바깥에서도 우리의 겉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4차원 존재는 공간 제약이 없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동시에 찾아도 그 존재는 여러 곳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3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도 기억으로만 볼 수 있고 미래는 볼 수도 없지만 시공간 제약이 없는 5차원 존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한다. 4차원이나 5차원에 알 수 없는 졷재가 있다면 우리는 인식의 한계로 그 존재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자기중심적으로 보는데 내가 보는 시점이 전지적(全知的)인 시점이 아니고 1인칭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지적인 시점이라고 착각한다면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된다. 사람이 영원히 살면 좋을 것인지 나쁠 것인지 토론하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면 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 영원히 살게 되는 순간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원히 산다는 것 자체는 우리의 존재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에서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당연히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달라질 것이다. 3차원 존재가 느끼는 삶의 가치관과 4차원 또는 5차원의 존재가 느끼는 삶의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에 영원히 사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의 저자 아니타 무르자니의 이야기>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있기 때문에 영혼의 시간 개념을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우리가 있는 3차원 세상에서는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르니 한 시점(one point) 밖에 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도 그런 방식으로 밖에 처리를 못하고요. 그런데 제 영혼이 몸 밖에 있었던 당시(혼수상태 당시, 임사체험 당시)에 저는 모든 시간의 좌표를 한꺼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와 관련된 것만 볼 수 있었죠. 제 소명이나 제 미래나 제 다른 인생들도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영혼이 다른 삶도 거쳐 왔다는 것을 아시나요. 예를들어 여러 번 살아왔다는 거죠. 저도 저의 다른 삶을 목격했고, 지금 3차원의 뇌로는 이것을 전생이라고 인식하지요. 그리고 현재 있는 것은 현생이고요. 그리고 향후에는 미래의 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영혼이 제 몸 밖에 나와 있었을 때에는 모든 삶들을 다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모두 동시에 말이죠. 그러니까 제 전생, 현생, 미래의 생도 볼 수 있었습니다. 쉽게 설명해 드릴께요. 빌딩을 상상해 봅시다. 예를들어 7층 건물이라고 할께요. 7개의 층이 있는데 특정 시간에 당신은 한 개의 층, 한 개의 장소에만 있어야 하죠. 빌딩 안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가거나 7층으로 갈 수도 있지만 한 순간에는 한 개의 층에만 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빌딩이 당신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이것이 바로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왔을 때와 같습니다. 빌딩 밖에 있으면 빌딩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있죠. 빌딩이 7층이네(7번의 전생이 있네)를 인지하고 7개의 층을 다 볼 수 있지만 빌딩 안에 있을 때는 다른 층들을 볼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있는 층, 현재 있는 방이죠. 당신이 현재 있는 곳이요. 그리고 다른 층을 경험하려면 그 방을 걸어나와서 다른 층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삶을 체험하면서 빌딩 전체를 못보는 겁니다. 다른 층들도 못보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생 밖에 못보는 거죠. 하지만 이승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것이 내 영혼이 거쳐 가야 하는 여정이구나. 이 7개의 삶을 다 살아야 마치는구나 알게 되죠. 그런데 우리가 현재 여기에 있어도 살짝 엿볼 수는 있습니다. 임사체험을 겪지 않았더라도 깊은 생각이나 명상에 잠기게 되면 살짝이나마 엿볼 수도 있죠. 미래의 당신 이미지를 말이죠. 그래서 미래의 당신을 알게 된다면 미래의 당신이 당신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이 당신이 당신의 미래를 느끼는 방법이에요. 당신도 미래를 엿보는 설렘을 느끼길 바래요. 제가 임사체험을 하고 돌아왔을 때(제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저는 제 몸이 회복될 거라는 걸 깨달았죠. 임사체험에서 10년전에 죽은 제 아버지가 저한테 말하기를 이제 진짜 네 자신이 누구인지 진실을 깨달았으니 네 몸은 매우 빨리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매우 설렜죠. 실제로 회복된 미래의 저를 볼 수도 있었고, 느낄 수도 있었죠. 이렇게 보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제 몸은 그렇게 따라 왔고요. 그러니 여러분이 매우 긍정적인 미래의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나타낼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삶으로 부를 것입니다. 당신이 그 미래로 불려갈 거고요.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