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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와 불교,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

by oesam 2023. 12. 18.

힌두교에서는 다양하게 드러난 신들의 배후에 최고의 신 또는 하나의 단일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힌두교의 신 관념은 삼신(三神) 일체설 즉 창조의 신인 브라흐만(Brahman), 유지(보존)의 신인 비슈누(Vishnu), 파괴의 신인 시바(Shiva)가 하나의 신이라고 믿어 왔다. 브라흐만, 비슈누, 시바라고 하는 신들은 단일한 최고의 신의 세 측면으로 믿어 왔다. 하나의 신이 다양한 신이나 인물 혹은 동물 등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인도인 고유의 화신 사상(化身思想) 즉 아바타 사상과 하나의 신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다고 하는 아바타 관념은 여러 부족 혹은 여러 다른 계급의 신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힌두교의 이러한 화신(아바타) 사상에 근거해서 세계의 모든 종교가 결국에는 하나이지만 나타난 모습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지니고서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진다고 하는 관세음보살 사상 등은 이와 같은 힌두교의 화신(아바타) 사상을 불교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붓다(부처님)를 유지(보존)의 신인 비슈누(Vishnu)의 8번째 화신(아바타)이라고 한다.
힌두교[힌두 지역(인더스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화신(아바타) 사상과 업과 윤회의 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의 아트만(영혼)은 불멸하며 개인의 업에 따라 윤회(환생)한다고 봤다. 사람들은 아트만(眞我진아,진아의 반대:불교의 무아無我)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욕망과 번뇌에 사로잡혀 옳지 못한 악업을 짓고 그 원인으로 윤회하게 되는데 자신의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영혼)을 깨닫고 집착(욕망)이 없는 행위를 통하여 선업을 짓고 절대자를 숭신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고 말한다.
힌두교에서 해탈에 이르는 세 가지 길(지혜의 길, 카르마의 길, 신애(神愛)의 길)에서 지혜의 길은 명상과 사색을 통해 해탈할 수 있고, 카르마의 길은 봉사, 집착(욕망)없는 행위를 통해 해탈할 수 있고, 신애(神愛)의 길은 신에게 복종, 헌신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다면 불교는 힌두교의 윤회 사상에서 비롯되었지만 무상(無常)/고정불변(固定不變), 무아(無我)/진아(眞我)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고 말한다.

 

해탈(解脫)은 인간의 영혼이 윤회의 속박(굴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영혼이 일단 육체 속에 들어간 뒤에는 해탈을 이루는 완전함이나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 윤회를 계속 하게 된다.
열반(涅槃)은 인도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의 음독(音讀)으로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열반은 어떤 깨달음에 의해 업보 및 윤회에서 해방된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열반(涅槃)은 해탈(解脫)과 같다.
카르마(karma)는 업보를 뜻하는 것으로 전생의 삶에서 영혼을 얼마나 성숙시켰느냐를 뜻한다. 진정한 영혼의 자유란 한마디로 해탈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해탈이란 윤회하지 않고 죽지도 늙지도 않는 영혼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가는 것을 뜻한다. 윤회의 목적은 영혼을 정화하여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얻는 것에 있다. 영혼의 자유는 극락왕생 또는 천국이다.

업보(karma카르마:선업이나 악업)에 따라 끊임없이 윤회하지만 고집멸도(苦集滅道:사성제)의 진리를 통해 깨달음(열반)에 이르면 윤회(輪廻)를 끊을 수 있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파한 사성제(四聖諦, 聖성스로울 성, 諦진리 제)의 첫째는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八苦8고)이라는 고성제(苦聖諦)이다. 
중요한 점은 명백하게 고통을 안겨주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대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각종 쾌락 또한 괴로움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 또한 괴로움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쁨이라 생각하는 것 조차 괴로움의 범주에 넣는 이유는 매우 단순한데, 그것이 영속(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 가운데에서 누리게 되는 즐거움은 반드시 끝나거나 빼앗기기 마련이며, 이것이 끝났을 때(빼앗길 때) 우리는 큰 상실과 슬픔, 집착에 빠지게 되므로 이러한 것들의 실체를 결코 열반의 속성에 넣을 수 없다는 이치다. 따라서 삶은 그 자체로 희노애락의 모든 요소가 괴로움에 속한다. 이를 표현한 말이 생즉고(生卽苦)이다. 
둘째는 그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다[괴로움의 원인에 관한 진리(集聖諦집성제)]는 것으로, 괴로움의 원인은 한마디로 무명(無明), 즉 알지 못함 혹은 어리석음이다. 무엇을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괴로움이 집착과 갈애[渴愛사후에 천국같은 훌륭한 곳에 가고 싶다는 욕구(욕망)이다. 이것도 자기 중심적인 욕구이며, 천국같은 곳도 윤회계(輪廻界)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에서 비롯됨을 알지 못한다. 자기에게 맞으면 집착(貪탐)하고 맞지 않으면 분노(嗔진)하고 집착과 분노로 생긴 어리석음(癡치)이 괴로움을 만든다.
셋째는 괴로움은 멸할 수 있으며 괴로움을 없앤 상태가 열반이라고 하는 멸성제(滅聖諦)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 즉 알지못함이니, 알면(깨달으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 
넷째는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팔정도(八正道)가 있다는 도성제(道聖諦)이다. 괴로움의 멸함을 설명한 후 도성제가 등장함은 곧 괴로움을 멸하는 깨달음(앎)이라는 것이 결코 머리로 깨치는 이론이 아니며, 평생을 수행해 나가는 팔정도 그 자체라는 것을 가리킨다. 
팔정도(八正道)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른 수단으로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가지며(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수행법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12가지 상호의존적인 단계인 십이연기(十二緣起)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12연기의 순환과정이 곧 불교가 말하는 윤회이다. 이 순환과정을 끊는 사람은 윤회로부터 해탈하여 괴로움이 그치게 된다.

부처님의 12연기법(緣起法)이란 12가지의 인연(因緣)을 말한다. 연기법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있으므로 그것 때문에 인연이 되어 저것이 있다라는 식으로 인연이 되는 연결고리를 12연기법이라고 한다.
12연기법에는 無明(무명), 行(행), 識(식), 名色(명색), 六處(육처), 觸(촉), 受(수), 愛(애), 取(취), 有(유), 生(생), 老死(노사) 의 12가지 순서가 있다.
12연기법으로 윤회를 설명할 때 無明(무명), 行(행)은 영혼에 해당하고 識(식), 名色(명색), 六處(육처), 觸(촉), 受(수), 愛(애), 取(취), 有(유)는 태어나기 전 상태이고, 生(생), 老死(노사)는 태어난 후의 상태를 말한다.
죽어서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알 수 없는 상태(無明)이지만 취향이 있어 떠돌아다니다가(行) 취향에 맞는 것을 찾으면(인식하면) 임신이 되고(識) 임신이 되면 명색(名마음, 色몸)이 생기고 명색이 생기면 육처(六處:眼눈안耳귀이鼻코비舌혀설身몸신意생각의-의식)가 생기고 육처가 생기면 촉[觸:色빛색(눈),聲소리성(귀),香향기향(코),味맛미(혀),觸닿을촉(몸),法대상법(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기고 촉이 생기면 수(受받을수:촉에 의해 형상,소리,냄새,맛,촉감,생각이 발생하여 그것을 느끼게 되면 괴로움, 즐거움, 괴롭지도않고 즐겁지도않음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수'라함)가 생기고 수가  생기면 애(愛사랑애: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사랑함(자비같은 사랑이 아닌 욕심같은 사랑을 말함)가 생기고 애가 생기면 취(取가질취:즐거움을 줄수있는 것을 사랑하면 그것을 끊임없이 가지려고 함)가 생기고 취가 생기면 유(有있을유:즐거움을 줄수있는 것을 사랑하여 끊임없이 가지려고 하면 결국 소유하게 됨)가 되어 태어나고(生날생) 늙고(老늙을노) 죽으면(死죽을사) 다시 영혼이 분리되어 윤회를 한다. 觸(촉) ⇒ 受(수) 愛(애) 取(취) 有(유)는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첫눈에(處) 반한 여자가(觸) 생기면 그 여자를 볼 때마다 좋아지게 되고(受) 그래서 사랑하게 되고(愛) 그래서 그 여자를 취하려 하고(取) 결국 그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有)].

 

이슬람은 알라(하나님)를 유일신으로 믿고 무함마드를 신의 사도로 여기는 아브라함 계통(유대교:성경의 구약만 믿음, 그리스도교: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믿음)의 종교이다. 기독교를 믿는 아랍 사람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한다. 한국인 무슬림은 '알라'를 하나님으로 변역한다. 아브라함이 믿은 '그 신'을 '알라'라고 한다. 알라를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전해진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예수를 인간이면서 신으로 숭배하자 이슬람 창시자 '모함마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무슬림은 창조주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존재도(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 성인, 학자, 성직자 등) 숭배하지 않는다. 성당에서는 聖號성호(십자)을 긋는다. 聖號經성호경(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도 있다. 교회에서도 聖父성부(하나님)와 聖子성자(예수님)와 聖靈성령은 하나이다(三位一體삼위일체)라고 한다.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삼위일체는 전해진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계(이승)와 사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저승(과학으로 설명이 안되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 실제로 있고, 사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혼이 모든 사람에게 실제로 있다면 삼위일체가 이해가 되지만 과학상식으로는 삼위일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믿으라 해서 막연하게 믿는 것보다 저승과 영혼을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다면 믿을 것이다. 삼위일체(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다)가 믿음의 대상이 아닌 앎의 대상이라면 누구나 믿을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어서 종교는 어렵다. 영혼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상(空想)을 한다.
아브라함은 아담의 20대손이고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이며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수명은 900세 정도, 대홍수후 노아의 아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수명은 점점 줄었지만 수백년을 살았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이고 아브라함의 장남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랍 민족이다. 메카는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곳이고, 자신이 전세계 어디에 있든 메카를 향하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브라함의 장남이던 이스마엘은 뒤늦게 아들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의 첫 부인 사라의 질투로 어머니 하갈과 함께 광야에 버려졌다. 수 일간 물을 마시지 못해 죽어가는 이스마엘을 살리기 위해 하갈은 샘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 사이를 7바퀴나 돌았고, 그 노력을 가상히 여긴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발 밑에서 잠잠 샘물을 솟게 하였다. 이후 모자는 그 부근에서 살았고, 후에 그들이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한 아브라함은 사막에서 운석을 구해와 이스마엘과 함께 제단을 쌓고 감사 예배를 올렸다. 이것이 오늘날 메카 카바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